◈우리의 만나 체험, 광야 체험을 후대에게 전하자◈
어떤 분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했다. 두 사람은 동시대 사람들이었는데, 톨스토이는 빈곤과 고통과 불법을 제거하기 위해 교육적인 프로그램과 개혁을 위한 계획을 끊임없이 구상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달리 고통 속으로 직접 자신이 들어갔다. 톨스토이의 프로그램은 시대를 바꾸지 못한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안락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미래와 진리를 그 고통을 통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의 작품으로 표현되어서 후대 사람들의 정서적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대 우리의 자녀교육에 이런 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톨스토이 식 교육에 많이 젖어 있다. 수많은 정보 교환이 있으나 그 정보가 우리의 아이들을 살려주지 못한다. 정보는 마치 단추 공장의 단추들 같으나 그 안에는 많은 속임수가 있다. 정보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정보들을 다스릴 만한 능력을 키우지 않는 한 그 정보에 속게 된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와 같다. 반면에 우리에게 도스토예프스키 식의 삶은 많이 모자라는 것 같다.
특히 신앙의 영역에서 더 그렇다. 신앙의 영역마저도 수많은 정보만이 우리의 아이들을 지배한다. 고급스런 교육자료, 시청각자료, 교회 환경들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참 진리와 자유와 신앙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해야 하는데, 그 경험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부모 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톨스토이 식의 가변적인 정보인가?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 식의 체험인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신앙적인 정보만 제공해주면 안 된다. 부모 된 우리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만나 체험, 광야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후대에게 그것을 전해줘야 한다. 아이들이 항아리 속 만나에 대해서 묻는다: 엄마, 아빠! 이것이 뭐야?그러면 대답 해줘야한다: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야.이러면서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이처럼 항아리 속 만나에는 1세대의 하나님 체험이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험들이 먼저 있어야 한다. 좋은 옷 입히고, 만난 것 먹이고, 좋은 학교 보내는 것으로만은 안 된다. 그들에게 보여줄 하나님의 실존과 경험을 알려주는 도구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1세대인 우리들의 분명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민자들로서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경험, 즉 만나와 광야의 체험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후대의 자손들에게 전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