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불구하고 ”
리더스 다이제스트 1982년도 12월호에 다음과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시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라. 만일 그대가 좋은 일을 하면 사람들은 그대에게 숨은 동기가 있을 거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만일 그대가 성공하면 그대는 가짜 친구들과 진짜 적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 만일 그대가 정직하고 솔직하면 그대는 상처받기 쉬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솔직하라. 오늘 그대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일지라도 내일이면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가장 위대한 생각을 가진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가장 작은 사람의 총탄에 의해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그대가 수년을 걸려 건설한 것이 하룻밤 사이에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하라. 그대가 세상에다 갖고 있는 최선을 베풀어도 그대는 무자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다 그대가 갖고 있는 최선을 베풀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은 참으로 귀한 한마디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또 미래와 험한 세상 속에 살면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낙심치 아니하고 우울증에 빠지지 아니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나갈 수 있게 하는, 승리하게 하는 강한 힘이 그 속에 배어 있습니다.
바울은 선언합니다. “나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내 생명보다 소중히 생각한다.” 라고. 성도들이여! 우리를 둘러싼 암담하고 참혹한 현실 속에서 이 위대한 선언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 수 있는가? 그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그런 긴박하고 처절한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 수 있게 했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온통 뒤틀려 있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풀어갈 수 없는 시련과 환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온갖 질병과 사고, 죽음, 실패가 가득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면서 바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면서 기쁨과 소망으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울 사도는 그의 젊은 제자 디모데에게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이러한 삶을 가능케 한 복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가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