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취재 수첩 =
“다시 태어나면 제가 당신을 도울게요” 17년째 자신의 발이 되어준 남편에게 ‘사부곡’(思夫曲)을 보내온 임 영자 씨(39)는 서울 금호동의 조그만 주택에서 남편 김석진씨(45)와 중 3인 딸 한나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호세나와 함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집안 거실로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싱크대입니다.
소아마비로 항상 앉아 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임씨가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싱크대의 다리를 없애고 바닥에 붙박이로 만든 것입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병든 어머니와 남편,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는 주부로서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진 사연만으로 알게 된 임씨에게 어떻게 3년동안 변함없이 구애를 펼 수 있었는지 참으로 남편의 천사 같은 마음씨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고 오히려 이를 묻는 기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였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불편하다고 그게 장애인은 아닙니다. 장애인 역시 따뜻한 마음이 있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저는 아내에게 처음 편지를 쓰고 또 만났을 때도 아내가 장애인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아내를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내가 있어 더 행복합니다.”
현재 임씨는 매주 3일 정립회관에서 운영하는 노들 장애인 야학에 나가 하루 4시간씩 공부를 합니다. 30년이 지난 이제 서야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내친 김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임씨와 결혼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제주에서 아내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12년째 봉고차를 몰며 행상을 하고 있는 김씨.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뒤늦게 ‘초등학생’이 된 아내가 안쓰러워 늘 아내의 발이 되어 준답니다. 정말 이런 남편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늘 사랑을 받고만 있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울먹입니다. “여보,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내 소원은 높은 구두 신고 당신 팔짱을 끼고 걸어보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 힘겹게 살고는 있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랍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일한 소망은 우리 부부가 이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 때 나는 건강한 사람… 당신은 조금 불편한 장애인으로 만나 다시 부부가 되는 거예요. 그 때는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예요”
지난 연말 경향신문사로 우송돼 온 임씨의 사부곡을 소개하게 된 것은 조그마한 갈등과 불화를 극복하지 못해 갈라섰거나 갈라서려는 많은 부부들에게 이들의 변함없는 러브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