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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8/18) “사과 한 알” <헤르만,로마 로젠발트 부부이야기>

                     * 사과 한 알 * <헤르만,로마 로젠발트 부부이야기>

 몹시 춥고 암울한, 1942년 겨울.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서는 다른 날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종잇장에 불과한 얇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추위에 떨며 서 있었다. 내게 이런 악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 놀고 있을 나이였다. 미래를 계획하고, 성장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갖는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나이였다. 그러나 그 꿈들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자가 아니었다.

집에서 붙잡혀 수만 명의 다른 유태인과 힘께 이곳에 끌려온 이후로 나는 하루하루, 순간 순간을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거의 죽은 상태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철조망이 둘러쳐진 담장 곁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있었다. 추위로부터 체온을 지키기 위해 앙상하게 마른 몸을 두 팔로 감싸고서. 나는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도 오랫동안 배가 고팠다. 음식은 꿈 속에나 있었다.

날마다 사람들은 사라져갔고, 행복한 과거는 단지 꿈 속의 일에 불과했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그 순간 철조망 건너편을 지나가고 있는 한 소녀가 눈에 띄었다. 그녀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슬픈 눈이었다. 그 눈은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한다는 그런 눈이었다. 나는 낯선 소녀가 가련한 모습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호주머니 안에 손을 넣더니 빨간 사과 하나를 꺼냈다. 아름답고 광택이 나는 빨간 사과였다.

  아, 저런 사과를 먹어 본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그녀는 조심스레 왼쪽 오른쪽을 살피더니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그 사과를 철조망 너머로 던졌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손가락을 떨면서……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세계에 이 사과 한 알은 생명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는 그 소녀가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다음 날, 나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똑같은 시간에 다시 철조망 근처로 나갔다. 물론 그 소녀가 다시 나오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갇혀 있는 나에게는 아무리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한 줄기의 희망이 필요했다. 그녀는 나에게 희망의 끈을 던져 주었고, 난 그 끈을 단단히 붙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 다시 그녀는 나를 위해 사과를 가져왔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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