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동실화: 여의사 이야기(2) ☀
그렇게 빨아내기를 몇 십분 정도 하자, 가래 끓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몇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네??… 의사 보내드린 적이 없는데요?” “분명히 병원에서 왔다고 했는데요?”“의사 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아무튼 저희 쪽에서는 의사를 보내드린 적이 없습니다.”여의사의 이름도 몰랐던 나는 헛걸음만 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얼마 후, 외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온 편지였습니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선생님이 참 예뻐해 주시던 유진이…, 가끔 저희 집에 쌀이며 반찬이며 놓고 가셨던 거 저 다 알고 있었어요. 그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지만… 그 못난 제자가 의사가 됐어요. 이 소식을 알면 제일 기뻐하실 선생님을 수소문해 찾았을 때, 많이 아프시다는 걸 알았어요.
침상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뵈었을 때 의사 가운을 입은 저를 보며 비록 말은 못하셨지만‘어서 오렴’하고 반겨 주시듯 제 손을 꼭 잡아주신 선생님… 저 알아보신 거 맞죠? 언젠가 제 꿈이 의사라고 하자, 선생님은 ‘유진이는 사람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주는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하셨죠. 그 말씀 지키려고요…
이곳, 아프리카 오지에서 환자들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유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거죠? 사랑합니다, 선생님.” 나는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그 여의사의 편지를 아버지 묘소에 고이 놓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위의 감동실화를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감동 스토리를 오래간만에 접하다 보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남을 도와준 것을 잊지 못하고 때때로 서운함을 갖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그토록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망설이다가 모든 것을 망각한체, 어떤 면에서는 서글픈 과거를 잊고 싶어 덮어버린 상태에서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위의 글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옛날을 더듬어 보며 혹시 위와 같은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산 것은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타인으로부터 크던 작던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으면서도 망각하거나 무시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곰곰히 생각하면 많고 엄청난 도움을 받은 사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모든 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보람된 삶의 공동체를 이룰 수가 있거든요. 우리 모두가 필히 지켜야할 “감사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요?